THE HUNGER OF CHRIST

그리스도의 갈망

> THE HUNGER OF CHRIST

그리스도의 갈망은 육신을 위한 양식을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매를 찾으러 무화과나무로 다가가셨을 때, 그분은 더 깊은 영적 실재를 드러내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안에서 믿음, 회개, 자비, 정의, 그리고 사랑의 열매를 끊임없이 찾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종교적 형식, 평판, 그리고 외적인 활동이라는 잎사귀들은 생명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할지 모르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겉모습 너머를 보시며 마음의 참된 상태를 살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갈망하시는 것은 변화된 삶입니다. 그분은 스승을 닮은 제자, 행동으로 이어지는 믿음, 자비로 나타나는 은혜, 그리고 타인을 섬기는 모습으로 드러나는 사랑을 원하십니다. 그분의 관심사는 사람들이 단지 무엇을 고백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열매 맺느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신자들에게 겉모습에 머물지 말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으로 나아가라고 촉구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전히 당신 포도원의 나무들 사이를 거니시며, 가지를 살피고 뿌리를 돌보시며, 하나님의 인내와 은혜에 합당한 수확을 찾고 계십니다.


중요한 것은 나무에 잎사귀가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열매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갈망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이 당신 백성의 삶을 통해 드러나고, 

성령의 열매가 굶주린 세상에 양식이 될 때 채워집니다.


전도자: 이  건 씀

St. GMC Corps

2026년 6월 6일 


그리스도께서 길 위에서 발견하시는 것

> WHAT CHRIST FINDS ON THE ROAD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이들이 서둘러 지나쳐 가는 길을 걸으십니다.

그분은 마을과 마을 사이, 도시와 도시 사이, 그리고 희망과 실망 사이의 길을 걸으십니다. 여행자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곳, 풀리지 않은 의문이 남은 곳, 그리고 거창한 말이 아니라 평범한 순간 속에서 마음이 드러나는 곳을 걸으십니다.

길을 가시며 그분은 많은 나무를 마주하십니다.

어떤 나무들은 무성한 잎으로 덮여 있어 많은 것을 약속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내어주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멀리서 보면 생명력이 넘쳐 보이고, 가지들은 자신감 있게 흔들리며 사람들의 시선을 끕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가까이 다가가시면, 겉모습과 실상이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님을 발견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멀리서 판단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더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가지를 살피십니다.

열매를 찾으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길 위에서 발견하시는 것은 

종종 마음속 깊이 숨겨진 것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믿음을 발견하십니다. 자비를 구하며 부르짖는 눈먼 거지, 감사를 드리러 돌아온 이방인, 가진 전부를 드리는 과부, 상처 입은 낯선 이를 위해 멈춰 선 사마리아인에게서 말입니다. 다른 이들이 별다른 가치를 보지 못하는 곳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귀한 열매를 발견하십니다.


때로는 열매 없는 잎사귀만을 발견하시기도 합니다. 긍휼 없는 종교, 순종 없는 지식, 변화 없는 겉치레 같은 것들입니다. 가지는 무성하지만 정작 거둘 열매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심판자로만 길을 걷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정원사로서 걸으십니다.

여전히 자라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십니다.

여전히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는 뿌리를 보십니다.

여전히 경작될 수 있는 메마른 땅을 보십니다.

실패 아래 숨겨진 가능성을 보십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모든 길은 결국 마음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여리고로 가는 길은 자비를 드러냈고, 엠마오로 가는 길은 깨달음을 드러냈으며,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죽기까지의 신실함을 드러냈습니다. 무화과나무 곁의 길은 잎사귀와 열매의 차이를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가운데 걸으십니다.

그분은 동네와 시장, 교회와 가정, 성공의 순간과 고난의 시기를 지나며 걸으십니다.

그분은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겉모습 너머를 바라보십니다.

말 너머의 진심을 살피십니다.

사랑과 자비, 믿음과 진리의 열매를 찾으십니다.

그리고 비록 아주 작을지라도 그런 열매를 발견하실 때, 하늘은 기뻐합니다.


시원한 물 한 잔.

용서하는 마음.

도움을 주는 손길.

기억해 주는 이웃.

함께 나누는 짐.

다른 이에게 내미는 작고 일렁이는 빛. 

세상 보기에는 하찮아 보일지라도, 정원사에게는 소중한 것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길 위에서 발견하시는 것은 

크기나 명성으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생명으로 가늠됩니다.

사람이라는 가지 위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자라나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그분은 당신이 찾아 헤매던 그 수확을 발견하십니다. 


전도자: 이  건 씀

St. GMC Corps

2026년 6월 6일 


시드는 것과 지속되는 것

> WHAT WITHERS AND WHAT ENDURES


무화과나무 이야기는 겉으로만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참된 생명을 지닌 것 사이의 시대를 초월한 구분을 가르쳐 줍니다. 한 계절 동안 잎이 무성할 수도 있고, 명성이 높아지거나 조직이 견고해 보일 수도 있으며, 외적인 성공이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와 믿음,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단절된 모든 것은 결국 뿌리부터 시들어 버립니다.


시드는 것은 오직 겉모습에만 의존하는 것들입니다. 교만은 시듭니다. 위선도 시듭니다. 알맹이 없는 신앙도 시듭니다. 양심 없는 권력도 ​​시들고, 진실함 없는 영향력도 시듭니다. 실체보다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세워진 모든 구조는 결국 그 연약함을 드러내게 됩니다.


지속되는 것은 하나님께 깊이 뿌리 내린 것들입니다. 믿음은 지속됩니다. 자비도, 진리도, 사랑도 지속됩니다. 성령의 열매 또한 지속됩니다. 은혜로 가꾸어지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유지되는 것은 고난과 검증, 그리고 변화의 시기를 견뎌내고 살아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믿는 이들에게 영원히 지속되는 것에 투자하라고 촉구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시선을 일시적인 겉모습에서 영원한 실체로 돌리게 하십니다. 그분은 인생의 가치가 멀리서 보기에 얼마나 인상적인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되는 열매를 맺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이 원리는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 공동체, 기관, 그리고 사회에도 적용됩니다. 모든 세대는 잎사귀 위에 설 것인가 뿌리 위에 설 것인가, 겉모습인가 진리인가, 일시적인 이익인가 지속적인 인격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시들어 버린 무화과나무는 경고의 표상이지만, 열매 맺는 나무는 약속의 표상입니다. 겉모습에 뿌리 내린 것은 결국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께 뿌리 내린 것은 지속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제자에게 던져지는 질문은 단순히 삶이 자라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삶이 자라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추수 때는 무엇이 지속되었는지를 드러내며, 열매는 그 나무의 본질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전도자: 이  건 씀

St. GMC Corps

2026년 6월 6일 


수많은 삶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의 마음

> ONE HEART REVEALED THROUGH MANY LIVES


복음의 기적은 단순히 개인이 구원받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 기적은 낯선 이들이 가족이 되고, 원수가 이웃이 되며, 수많은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몸을 이루는 데 있습니다.


세상은 분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언어, 문화, 국적, 정치, 재력, 그리고 수없이 많은 인간적 장벽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을 갈라놓는 그 벽을 끊임없이 허무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그분은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십니다. 즉, 더 이상 자신들을 나누는 것에 정체성을 두지 않고, 자신들을 하나로 묶어주시는 분 안에서 정체성을 찾는 사람들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이 결코 개인적인 소유물로만 머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은 자연스럽게 밖으로 흘러나갑니다. 우리를 용서하신 그 은혜가 우리에게 타인을 용서하도록 가르칩니다. 우리를 회복시키신 그 자비가 우리에게 타인을 회복시키도록 부르십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맞아주신 그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타인을 우리의 삶으로 받아들이도록 이끕니다.


성도가 자신만을 위해 살 때, 그리스도의 몸은 약해집니다. 그러나 서로의 짐을 지고, 겸손으로 섬기며, 이웃의 유익을 구할 때, 그 몸은 비로소 가시적으로 드러납니다. 교회는 단순한 모임 장소를 넘어,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증거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더 깊은 질문은, 과연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마음이 드러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까? 그분께서 섬기신 것처럼 섬기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까? 타인을 경쟁자가 아닌, 같은 몸의 지체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까?


제자가 스승보다 높을 수는 없습니다. 제자가 스승을 닮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는, 개인적인 위대함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더 깊이 닮아갈수록, 우리는 서로와 더 깊이 연합하게 됩니다.


세상은 종종 "내 이웃이 누구인가?"라고 묻습니다. 복음은 서로에게 이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들어냄으로써 그 질문에 답합니다. 세상은 "누가 내게 속해 있는가?"라고 묻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서로에게 속해 있다"고 답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비전입니다. 하나의 믿음을 공유하는 수많은 삶, 하나의 목적을 위해 쓰임 받는 다양한 은사, 한 성령으로 연합된 많은 지체,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 고동치는 하나의 마음.


이러한 연합이 있는 곳에 그리스도께서 드러나십니다.

이러한 사랑이 실천되는 곳에 하나님 나라가 눈에 보이게 됩니다. 

이 자비가 나누어지는 곳에서 하늘이 땅과 맞닿습니다.


우리는 여럿이나 하나의 몸입니다.

수많은 목소리이나 하나의 노래입니다.

수많은 삶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마음입니다. 


전도자: 이  건 씀

St. GMC Corps

2026년 6월 6일 


무화과나무 너머의 산

> The Mountain Beyond the Fig Tree


다음 날 아침, 제자들은 뿌리째 말라버린 무화과나무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전날까지만 해도 멀쩡해 보이던 나무가 완전히 죽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시선은 파괴라는 기적에 쏠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무 너머를 보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심판을 보았지만, 예수님은 제자 훈련의 기회를 보셨습니다.

제자들은 말라버린 나무를 보며 놀라워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이룰 수 있는 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나무에 머물러 있는 대신, 그분은 산을 가리키며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이 바로 복음의 핵심입니다.


무화과나무는 경고였지만, 그것이 목적지는 아니었습니다. 그 나무는 열매 없는 잎사귀, 실체 없는 겉모습, 변화 없는 종교 생활이 지닌 위험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생명과 단절된 것은 결국 뿌리째 말라버린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죽은 나무만 바라보며 살도록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이 산을 옮기도록 부르셨습니다.


산은 하나님의 백성 앞에 놓인 모든 장애물을 상징합니다. 그것은 두려움, 의심, 불의, 분열, 고난, 그리고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벅차 보이는 모든 도전을 의미합니다. 산은 우리가 자신의 힘의 한계를 깨닫게 되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산이 옮겨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일까요? 믿음이란 우리 자신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산과 같은 장애물로 가득 찬 세상으로 나아가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들은 박해와 거부, 투옥, 고난, 그리고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죽고 깨어진 것에만 시선을 둔다면 낙심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시선을 말라버린 나무에서, 하나님의 살아있는 능력으로 돌리셨습니다.


이 교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많은 사람이 말라버린 나무를 바라보며 평생을 보냅니다. 그들은 실패, 실망, 부패, 위선, 그리고 잘못된 모든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물론 그리스도께서는 열매 없는 것을 드러내십니다. 또한 공허하고 거짓된 것을 직면하게 하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거기서 멈추지 않으십니다.


모든 말라버린 나무 너머에는 산이 서 있습니다.

모든 위선이 드러나는 곳 너머에는 믿음으로의 초대가 있습니다.

모든 심판 너머에는 변화를 향한 부르심이 있습니다.

복음은 단지 잘못된 것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을 보여줍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를 드러내셨던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믿음으로 산을 옮길 수 있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심판을 선포하셨던 바로 그 주님께서, 또한 신뢰하라는 초청을 건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나무와 산이 주는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나무를 보며 복음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함을 기억합시다.

산을 보며 하나님의 능력보다 더 큰 장애물은 없음을 기억합시다. 

나무는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치고, 산은 우리에게 믿음을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시들어가는 것에만 관심을 두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자라나는 것에 관심을 두십니다.

그분은 단지 공허한 종교적 행태를 드러내시는 데 그치지 않고, 열매 맺는 제자를 빚어가십니다.

그분은 단순히 죽은 뿌리를 보여주시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를 살아있는 믿음의 자리로 초대하십니다.


제자들은 죽은 나무를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옮겨지기를 기다리는 산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여전히 당신의 백성에게 잎사귀 너머를, 폐허 너머를, 

그리고 장애물 너머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부르십니다.

무화과나무 너머에 있는 그 산이야말로 믿음의 지평선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자: 이  건 씀

St. GMC Corps

2026년 6월 6일  


겉모습 이면의 실체

> THE REALITY BEHIND THE APPEARANCE


복음은 끊임없이 우리의 시선을 겉모습 너머 실체로 향하게 합니다. 잎사귀는 생명을, 말은 믿음을, 활동은 헌신을 암시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더 깊은 곳을 보십니다. 그분께서는 뿌리와 열매, 그리고 마음의 참된 상태를 살피십니다.


멀리서 보기에 무화과나무는 건강해 보였지만, 그 겉모습은 열매 없는 빈약함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개인이나 기관, 공동체도 삶에 참된 의미를 부여하는 열매가 결여된 채 생명력 넘치는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습니다. 외적인 성공, 종교적 행위, 세간의 평판, 눈에 띄는 활동 등은 영적 건강을 가늠하는 확실한 척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겉모습이 아닌 실체 안에서 살아가라고 부르십니다. 중요한 것은 멀리서 보았을 때의 삶의 모습이 아니라, 면밀히 살폈을 때 어떤 결과를 맺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참된 믿음의 증거는 잎사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 자비, 정의, 겸손, 신실함, 그리고 섬김이라는 열매에서 발견됩니다.


이 원리는 개인의 영성을 넘어 확장됩니다. 이는 리더십, 조직, 정부, 기술, 그리고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모든 구조에 적용됩니다. 무엇이든 그 참된 가치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아니라 그 결과에, 내세우는 주장이 아니라, 맺은 열매에, 그리고 이미지 그 자체가 아니라, 실체에 달려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겉모습 이면의 진리를 추구하고 실체에 뿌리내린 삶을 가꾸는 사람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결국 하나님께서는 잎사귀에 속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열매를 찾으십니다. 그분께서는 겉모습에 감동하지 않으시며, 변화를 찾으십니다.

겉모습 이면의 실체, 그곳이야말로 심판이 시작되고 회개가 가능해지며, 은혜가 정원사에게 합당한 수확을 맺게 하는 자리입니다. 


전도자: 이  건 씀

St. GMC Corps

2026년 6월 6일 


정원사의 수고

> THE LABOR OF THE GARDENER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하나님의 은혜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며, 인내심 있고 목적이 분명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주인이 열매를 찾았으나 얻지 못했을 때, 정원사는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나무가 훗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뿌리 주변을 파고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힘든 수고를 감수했습니다.


정원사의 이러한 수고는 성도들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상징합니다. 은혜는 단순히 심판을 유예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지속적인 역사입니다. 땅을 파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의 완고한 부분을 깨뜨리시는 방식을 상징합니다. 뿌리에 거름을 주는 것은 진리, 자비, 징계, 그리고 사랑으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로는 방해나 불편함으로 느껴지는 일들이, 실상은 한 사람의 삶이 성장하도록 준비시키는 바로 그 과정일 수 있습니다.


정원사가 수고하는 이유는 남들이 실패라고 보는 곳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현재의 불모함 속에 감추어진 미래의 수확을 내다봅니다. 그의 사역은 소망과 인내, 그리고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나기를 바라는 헌신에서 비롯됩니다.


이 비유는 신자들에게 영적 성장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 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돌보심과 끊임없는 가꾸심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열매가 없다고 해서 포도원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친히 흙 속으로 들어가시고, 뿌리를 돌보시며, 또 한 번의 계절을 허락하십니다. 그분은 변화를 위해 끈기 있게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정원사의 수고는 복음의 핵심을 드러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서 단순히 열매를 요구하시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그들 안에서 능동적으로 역사하십니다. 수확은 인간의 노력만으로 얻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신실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비가 베풀어지는 모든 계절은 정원사께서 여전히 일하고 계시며, 뿌리를 돌보시고, 당신의 인내와 사랑에 합당한 수확을 이끌어내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전도자: 이  건 씀

St. GMC Corps

2026년 6월 6일 


수확을 향하여

> TOWARD THE HARVEST 


그리스도인의 삶은 단지 겉모습을 갖추어가는 여정이 아니라, 수확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정원사는 잎사귀만을 위해 수고하지 않습니다. 잎사귀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목표는 아닙니다. 뿌리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최종 목적지는 아닙니다. 땅을 파고, 가지를 치고, 물을 주고, 기다리는 모든 계절에도, 더 큰 목적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수확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 진리는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많은 경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어떤 계절은 성장하는 시기처럼 느껴지고, 어떤 계절은 땅을 파헤치는 시기처럼 느껴집니다. 풍성함을 누리는 때도 있고, 기다려야만 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원사는 그 무엇도 헛되이 버리지 않으십니다. 모든 계절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모든 은혜의 행위는 더 큰 비전을 위해 쓰입니다. 모든 교훈과 책망, 격려와 시련은 하나님의 경작하시는 사역의 일부가 됩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정원사가 열매가 없다고 해서, 나무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그분은 흙 속으로 다가가십니다. 딱딱하게 굳은 땅을 일구고, 뿌리에 영양분을 공급하며, 또 한 번의 계절을 허락하십니다. 그분의 수고는 희망의 표현입니다. 정원사가 일하시는 이유는 나무 자신보다, 먼저 수확을 내다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현재의 상태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혜가 맺을 수 있는 결과에 주목하십니다. 우리는 열매 없는 가지를 보지만, 그분은 미래의 열매를 보십니다. 우리는 실패를 보지만, 그분은 가능성을 보십니다. 우리는 지체를 보지만, 그분은 준비를 보십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 근본적으로 희망의 메시지인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내하시는 것은 수확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신 것은 수확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일하시는 것은 수확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구하시는 수확은 단순한 종교적 활동이나 외적인 성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수확이란 그분의 백성 안에서 그리스도의 삶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랑, 자비, 신실함, 친절, 진리, 겸손, 그리고 긍휼은 정원사의 사역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열매입니다.


세상은 종종 숫자와 성취, 그리고 겉모습으로 성공을 가늠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열매로 성공을 가늠합니다. 자비로운 행동 하나가, 수천 개의 화려한 잎사귀보다 더 가치 있을 수 있습니다. 변화된 마음은, 세상의 인정보다 더 위대한 수확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랑한 이웃은, 멀리서 얻은 명성보다 하나님 나라를 더 잘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다림의 계절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뿌리 주변의 흙이 뒤집히는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정원사의 수고를 그분이 포기하신 것으로 오해하지 마십시오. 땅을 파는 일은 경작의 과정이며, 가지치기는 성장의 과정이고, 기다림은 수확의 과정입니다.


떠오르는 모든 태양은 또 하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모든 계절은 열매를 맺을 또 다른 기회입니다.

모든 자비의 행위는 하나님 나라가 자라가고 있다는 또 하나의 표징입니다.

우리는 단지 겉모습을 갖추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잎사귀는 빛을 모으고, 뿌리는 영양분을 흡수하며, 정원사는 수고를 아끼지 않고, 그 열매는 굶주린 이들을 먹입니다. 포도원의 모든 것은 수확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언젠가 정원사께서 당신의 포도원을 거니실 때, 그분의 수고로 맺힌 풍성한 열매를 맺은 가지들과, 멈추지 않고 역사하신 은혜로 변화된 삶을 발견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복음의 이야기는 곧 인내하시는 정원사께서, 당신의 포도원을 수확을 향해 이끌어가시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자: 이  건 씀

St. GMC Corps

2026년 6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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